너나없이 ‘영혼까지 끌어당겨’ 투자를 하고, 빚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평생 힘들게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부터 다섯 살 아이에게 편법 증여를 하는 졸부들까지, 돈을 둘러싼 사람들의 민낯은 극과 극을 오간다.
중요한 생존 수단이되 오히려 그것이 생존을 위협하는 냉혹한 돈의 아이러니! 과연 돈이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소설가 조정래가 오늘 이 통렬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대한민국 근현대 3부작’인 대하소설『태백산맥』『아리랑』『한강』으로 1천 5백만 독자들에게 우리 현대사의 참모습을 알리고, 장편소설『정글만리』『풀꽃도 꽃이다』『천년의 질문』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루어왔던 조정래 작가.
그가 4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황금종이』(전2권)를 출간했다. 원고지 약 1,800매 분량의 이 작품에서는 돈을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비극의 향연이 펼쳐지며, 황금만능주의로 비인간화되어 가는 세태에 경종을 울린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 그 누구인가!
종교도, 권력도, 핏줄도, 도덕도 '돈' 앞에선 소용없다!
정의롭고 청렴한 행보로 명망을 쌓아가는 변호사 이태하에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돈과 관련된 송사가 날아든다. 돈 앞에선 그 진하던 핏줄도 희미해지는가.
아버지가 어머니 몫으로 남긴 유산마저 빼앗으려 소송을 건 딸,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아버지의 금고를 습격한 형제들의 난타전, 유산 상속이 걱정돼 홀로 된 아버지의 만혼을 저지하려는 자식들.
어느 만큼 지니지 못하면 인간의 존엄마저 박탈해 버리는 것이 또한 돈이다. 하루아침에 월세 4배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와 갈등하는 식당 주인, 청소년들에게 편의점에서 담배와 술을 배달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독거노인까지.
생명마저 위협하는 무서운 중독, 바로 ‘돈 중독’이다. 갑작스럽게 애인과 헤어진 여자의 속사정과, 로또로 일확천금을 노리다 이성을 잃어버린 가장, 도박과 가상 화폐 투자에 빠져버린 두 남자의 인생 마지막 복수. 돈의 냉혹함은 남녀노소, 지위 고하, 신념의 유무도 가라지 않는다.
연이은 취업 실패로 거동이 불편한 노 회장의 수발을 드는 고액 아르바이트에 뛰어든 20대, 운동권의 대부였으나 암에 걸린 남편으로 인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중년 여성.
주인공 이태하 변호사를 중심으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짜여진 모든 이야기들은 마치 한 편 한 편이 드라마를 보는 것 같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와 비슷한, 혹은 그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작가의 예리한 필치와 섬세한 심리 묘사는 각각의 이야기가 지닌 리얼함을 극대화하며 독자들을 강력하게 이입시킨다.
돈의 위력과 인간의 존엄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갈 것인가!
이런 세상에서 외로이 싸우는 이태하 변호사에게 희망이자 기댈 곳은 선배 한지섭이다.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고,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지만 초심을 잃고 권력과 야합하는 정치 내부의 상황에 환멸을 느낀 그는 귀농하여 살아간다.
자본주의의 경쟁과 탐욕에 휘둘리지 않고, 지혜롭게 균형을 잡으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작가가 제시하고자 하는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일 것이다.
돈으로 신음하는 의뢰인들의 고통과 파란만장한 삶을 보며 이태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되묻는다.
‘도대체 돈이란 무엇인가?’
그는 대학 시절 ‘인생에서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받은 철학 교수가 내놓았던 답을 떠올린다.
“돈은 인간의 실존이자 동시에 부조리다!”
여러 난맥상의 사회 문제와 갈등, 행과 불행의 기저엔 돈이 있다. 자신도 해치고 타인도 해치는 ‘돈 중독’으로 인해 우정도, 신의도, 인권도, 목숨도 무참히 짓밟고 짓밟히는 일은 허다하다.
악화되는 경제 상황으로 모든 가치를 앞질러 날로 막강해지는 돈의 힘…… 이러한 시점에 작가는 우리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생존의 도구이자 생존을 위협하는 무기이기도 한 돈의 위력 앞에서 어떻게 노예가 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중심을 유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등단 50주년을 지나올 때까지 매순간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역사와 사회 문제는 물론 개인의 실존까지 다양한 주제를 천착해 왔던 작가 조정래.
신작『황금종이』역시 그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작가는 “돈은 도구이자 수단일 뿐,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는 철학성을 확보해야만 한 번뿐인 삶을 올바르게” 영위해 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매일 생각하고, 매일 걱정하고, 매일 꿈꾸는 것,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황금종이』는 금력(金力)을 향한 맹목적인 쏠림을 잠시 멈추고 나와 우리를 위한 통찰과 각성의 시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작가의 말
‘황금종이’라는 것!
우리가 지니면 힘이 나고, 없으면 힘이 빠지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남에게 줄 때는 쉬워도 남에게 얻기는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너나없이 가장 갖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에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어느 만큼 지니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박탈해 버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전혀 갖지 못하면 곧바로 죽음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5,000여 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우리를 지배해 온 것은 무엇일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력에 휘말려 얼마나 많은 비극적 연극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일까.
주요인물 소개
「이태하」
원칙에 입각한 정의로움과 청렴함, 그리고 승소를 이어가는 뛰어난 능력으로 주변의 신망이 두텁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변호사이다. 돈에 얽힌 각종 사건들을 맡으며 줄곧 돈이 인간에게 무엇인지, 어떻게 그 노예가 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박현규」
이태하의 고교 동창으로 대기업 임원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화력과 리더십이 뛰어났고 부와 출세를 추구하며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상식과 인간적 고뇌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정의에 손을 내미는 친구 이태하를 늘 안타까워하면서 주변의 사건들을 소개한다.
「한지섭」
이태하의 대학 선배로 정신적 멘토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선두에서 활약하고 정치계에 입문하지만, 초심을 잃고 권력에 야합하는 정치권과 운동권의 모습에 귀농을 결심한다. 이태하는 복잡한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
「윤민서」
대기업 간부로 성공한 중년이자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인정도 많아 지인은 물론 친척들의 고민 해결에도 앞장선다. 고교 동창인 이태하에게 친구들을 이어주거나 커다란 소송건을 소개하기도 한다.
「강남길, 오수자 부부」
한 건물에서 소박한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로 언젠가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자기 가게를 갖는 꿈을 품고, 근면한 태도와 넉넉한 인심, 손맛으로 단골을 늘려가며 착실히 살아간다. 그러던 중 바뀐 건물주로부터 월세 4배 인상이라는 갑작스러운 요구를 받고 충격에 휩싸인다.
「전진혜」
20대의 취업준비생. 연이은 취업 실패에 절망하던 중 24시간 거동이 불편한 부유한 노인의 수발을 드는 고액 아르바이트를 제안받고 고민 끝에 뛰어든다.
「김수희」
전진혜의 단짝.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에도 꿋꿋하게 대학생활을 해내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취업 실패가 거듭되자 점차 미래를 비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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