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호퍼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재해석 [호퍼 A-Z]

by 암튼무튼 2023. 8. 20.
반응형

지난 4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호퍼 전시회' 이후, 에드워드 호퍼의 생애를 알파벳 키워드로 정리한 책 『호퍼 Hopper A-Z』가 더위를 잊고 치솟은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는 가장 대중적인 미국 현대미술가로 불리는 화가로 한때는 잡지 일러스트를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한 삽화가였으며,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뉴욕의 원룸 아파트에서 54년을 살았던 인물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눈여겨봤다면, 일상 곳곳에서 호퍼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림, 상업광고, 어쩌면 호퍼를 오마주한 영화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가장 미국적인 그림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북아메리카의 광대한 들판과 바다, 어둡고 고립된 현대 대도시의 한순간을 그려내서 이름을 알렸다.

 

알프레드 히치콕으로 대표되는 영화 제작자들과 팝아트 예술가들에게 이어진 호퍼의 작품 세계는 이제 전 세계 어디에 사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느낌을 전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관객에게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호퍼의 대표작 「나이트호크」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밤거리, 식당과 거리를 분리하는 거대한 통유리창, 서로를 바라보는 듯하면서도 눈을 피하는 것 같은 인물들이 그렇다.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고, 서로 할 말을 품은 듯한 인물들이 관객들을 가슴 설레게 만든다.

 

호퍼의 그림을 보는 관객은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낯선 세상에 빠져든다. 그림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거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품었을지 상상하게 된다.

 

호퍼 A-Z - 예스24

2023년 4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호퍼 전시회가 열린다. 한국 최초로 개최되는 호퍼 회고전을 맞아 에드워드 호퍼의 삶과 예술을 담아 써낸 『호퍼 Hopper A-Z』를 박상미가 한국어로 옮겼다. 202

www.yes24.com

 


에드워드 호퍼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창문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얼프 퀴스터는 호퍼 삶의 장면들을 키워드로 포착하고, 호퍼의 작품에 담긴 긴장감과 멜랑콜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밝힌다. 호퍼를 말하는 시인, 마크 스트랜드의 『빈방의 빛』을 번역했고 호퍼의 작품에 깊은 애정이 있는 번역가이자 예술가 박상미가 책을 한국어로 옮겼다.

박상미는 『호퍼 Hopper A-Z』에서 제공하는 키워드가 호퍼 작품 속 ‘창문’과 같다고 말한다. 1928년 작 「밤의 창문」에서 호퍼는 열린 창문을 통해 뉴욕의 아파트 안을 들여다보게 한다. 호퍼의 작품들에서 블라인드나 커튼에 가려진 창문, 닫힌 창문은 보이지 않는 실내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얼프 퀴스터의 키워드는 실내가 훤히 비쳐 보이는 창문처럼 호퍼라는 인물을 들여다보게 하고, 『호퍼 Hopper A-Z』에서 미처 언급하지 않은 키워드들도 감춰진 호퍼의 삶에 대한 우리만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등대 언덕>(1927)



에드워드 호퍼를 만든 조세핀 호퍼

에드워드 호퍼와 마찬가지로 화가였던 그의 아내 ‘조시’, 조세핀 호퍼는 이 책에서 주연만큼 빛나는 조연이다. 호퍼와 함께 미술을 공부하고 여행하고 그림 모델이 되었던 조시는 에드워드 호퍼 사후 작품들을 정리하고 미술관에 기증했다. 조시는 호퍼가 남긴 작품들에 제목을 붙이고 짧은 메모를 써넣었다.

조시는 호퍼에게 중요했다. 호퍼에게 수채화를 그리도록 권유한 것은 아마도 그녀였고, 호퍼가 그린 소수의 모델 중 한 명으로, 여성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모델이 되었다.

 

그녀는 「뉴욕극장」의 안내원, 「누드 쇼」의 스트리퍼, 빈방에 서서 햇빛을 받으며 담배를 들고 있는 나체의 나이 든 여성(「햇볕 속의 여자」)의 모델이다.

 

두 사람은 많은 점에서 매우 달랐다. 조시는 키가 작았고 가만히 있지 못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어린아이처럼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다. 반면 호퍼는 키가 크고, 용의주도하며, 과묵하기로 악명 높았다. 1960년대 초에 했던 인터뷰 기록을 보면 조는 기꺼이 호퍼를 대신해 말하곤 했다.

재능 있는 남편의 그늘에 가려졌던 배우이자 화가 조세핀 호퍼는 에드워드 호퍼와 상상 이상의 폭력을 주고받았다. 너무나 달랐던 둘은 극적인 대립을 겪기도 했지만, 조시는 에드워드 호퍼가 그림에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게 유도했고 모티프를 찾도록 도왔다.

 

결혼 전 미국의 유명 화가들과 함께 그림을 전시하던 뛰어난 화가 조시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자기 전시회에 걸도록 브루클린 미술관 큐레이터를 설득했다. 조시와 결혼한 그해 뉴욕에서 열린 에드워드 호퍼의 개인전은 처음으로 완판을 기록했고 에드워드 호퍼는 이후 전업 화가로 전향한다.

그러나 그 시대 여성에 대한 편견과 남편의 명성은 조시를 ‘화가’가 아닌 ‘화가의 아내’로 만들었다. 조시의 좌절된 마음은 부부 싸움과 그녀의 작품들과 일기에서 표출됐다. 에드워드 호퍼 역시 당시의 편견에 물들어 있었는데, 조시의 작품을 조롱하거나 집안일에 힘쓰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중요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이어졌다. 두 사람이 결혼한 1924년부터 호퍼의 모델이자 매니저로 평생을 보낸 조시는 에드워드 호퍼의 사망 후 호퍼와 자신의 작품들을 정리해 기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둔다.

 

<웨스턴 모텔>(1957)



예술가의 삶에 조명을 비추다

얼프 퀴스터는 호퍼의 걸작들에서 한발 물러서서, 호퍼라는 한 인간과 호퍼를 완성시킨 기여자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에드워드 호퍼의 삶은 그의 작품에 대한 재해석의 길을 연다. 에드워드 호퍼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자기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호퍼가 묘사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가장 사적인 인상이었다. 호퍼가 추구하던 형이상학은 호퍼의 가장 사적인 경험에서 비롯했을 수밖에 없다. 호퍼가 자란 곳, 좋아하던 시인, 유럽 여행, 잡지 삽화가로의 경력 등 호퍼라는 예술가를 만들어낸 경험들이 이 책 『호퍼 Hopper A-Z』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