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세계를 조명하고 분석한 책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이 연일 화제다. 미술사학자 이연식 저자의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은 호퍼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해 나가던 시기의 그림들부터 〈도시의 아침〉, 〈주유소〉, 〈바다 옆의 방〉, 〈일광욕하는 사람들〉, 〈일요일 이른 아침〉 등 이번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는 아쉽게 만나볼 수 없었던 호퍼의 대표작들을 포함해 호퍼의 그림 55점을 수록, 분석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일반적으로 ‘도시와 고독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술사학자 이연식 저자는 이 책에서 호퍼의 작품을 15가지 주제로 나누어 바라보고, 그의 작품 세계에 숨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연식 저자는 "호퍼가 그림에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있어 매우 주도면밀했기 때문에, 그림 하나하나에 대상에 대한 고유한 시선과 화면을 구성하는 책략이 숨어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도시’, ‘고독’, ‘빛과 어둠’과 같이 호퍼를 수식하는 익숙한 주제에만 한정되지 않고 ‘시선’, ‘일상’, ‘분위기’, ‘에로티즘’, ‘어스름’, ‘공연’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주제의 관점으로도 호퍼의 작품을 다채롭게 바라보고, 붓을 든 화가로서 호퍼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이유가 없다”는 호퍼의 말처럼, 호퍼의 그림은 오로지 그림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는다.
사실적이지 않은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인간으로서의 숙명’을 담아내다
호퍼는 제1, 2차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을 지나온 뉴욕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속 도시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을 잃어버린 채 저마다 고립되어 있다. 그들은 고독하거나, 권태에 짓눌려 있거나, 현실에서 도피하려 하거나, 벗어날 길 없는 상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처럼 호퍼가 그려낸 군상은 지금 현대인의 모습과도 꼭 들어맞는다. 우리는 호퍼의 그림에서 20세기의 뉴욕을, 21세기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를 발견한다.
이연식 저자는 호퍼가 사실주의 화가로서의 면모를 넘어 회화에 대해 끈질기게 연구하며 진정으로 남기고자 했던 것들에 대한 흔적을 섬세하게 읽어낸다.
호퍼는 시대의 분위기와 감정을 화폭에 사실적으로 옮겨낸 화가이지만, 실제로 그의 그림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호퍼의 그림에서 도시는 종종 블록을 쌓아놓은 것처럼 어색하고, 창문 밖의 자연은 정물화처럼 생기가 없으며, 벤치에 앉아 일광욕하는 사람들은 정장을 차려입고 있다.
호퍼는 그림 속 요소들을 마치 레고처럼 이리저리 끼워 맞추고 다양한 암시와 의도를 담은 구도로 화면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반응을 즐겼다. 단순히 그림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회화가 감정을 환기하는 방식에 대해, 조형적 요소의 다양한 배치가 관객에게 불러일으키는 감흥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한 것이다.
화가로서 완성된 시기의 호퍼는 그림으로 고독, 외로움, 불안 같은 단편적인 감정을 전하는 것을 넘어선다. 호퍼도 말했듯 그가 그림에 담아낸 것은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에 가까운 무엇이다.
“호퍼의 그림은 호퍼와 관객이 벌이는 하나의 게임이다”
호퍼는 그림에 뻔한 암시를 주어 관객에게 저속한 상상을 유도하고, 공간의 부차적인 존재를 화면 정가운데 배치하여 의문을 주고, 시선의 엇갈림으로 관계와 분위기를 암시하고, 태연하게 문밖에 바다를 그려 관객을 당황시키곤 한다.
호퍼는 관객을 한시도 편안하게 두지 않고, 그림을 사이에 두고 관객과 속고 속이는 게임을 벌인다. 저자는 그림에 숨겨둔 호퍼의 의도적 착시와 속임수, 조형적 장치를 하나씩 짚어가며 그가 화면을 구성한 전략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면면히 풀어낸다.
그렇게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호퍼의 그림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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