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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밥 먹여준다면] 예술경영의 시대2/2. 콘텐츠의 운명을 결정하는 예술경영인

by 암튼무튼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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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의 시대1/2. 스타 탄생은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확률...'왕좌의 게임'

심장을 움켜쥐며 흔들던 공연이 막을 내리고 커튼콜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나는 초연의 커튼콜 때 주연도 조연도 아닌, 그들의 배경처럼 서 있는 수많은 무명배우들(앙상블)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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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예술산업의 키는 ‘예술경영인’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작곡, 안무, 배우, 연출가의 역할은 당연히 중요하다. 이 중 배우와 안무, 연출, 무대 디자인 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아직 대본과 곡을 책임지는 창작의 수준은 아직 국내에 머물러 있다.

 

물론 최근에 무대에 올라가는 작품은 수많은 다듬기를 거쳐 완성도가 높아져 라이선스 보다 훌륭한 공연도 속속 등장하며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지만.

시와 소설이 모국어를 기반으로 자국의 문학적 토대 위에 머무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본과 같은 번역문학의 기초만 다지면 언제든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드라마와 노래, 영화, 뮤지컬의 미래를 생각하면 국내에 머문다는 것은 정체와 종말을 의미한다.

 

특히 창작 뮤지컬이 국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더구나 세계 뮤지컬 시장의 벽은 절대적인 수준의 차이가 아니다. 언어의 헤게모니와 뮤지컬 형식을 태동시켰던 문화적 토양의 차이가 근원적 제약으로 남아 있다고 본다.

 

우리 종합예술인 ‘마당굿’엔 춤, 노래, 대사, 가면, 서커스는 물론 전체 군중의 신명과 단합을 끌어내는 놀이의 성격까지 가미되어 있어, 우리 전통춤인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하회마을에서 직접 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지닌 문화 콘텐츠의 힘에 대해 각성한다. 다만 이를 무대로 가져가거나 세계의 보편적인 문법으로 만드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뿐이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순문학에 비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서사를 지니고 있고, 그 형식 또한 쉽다. 대중가요의 단순한 훅, 영화에서 비루한 현재를 사는 주인공이 스타가 되거나 인류를 구하는 영웅적 서사, 아내나 딸을 잃은 남편이 이를 구하기 위해 어둠의 소굴로 뛰어드는 이야기, 한국 드라마에서 신데렐라 서사가 재벌 남자 중심으로 변환되는 구조 등. 우리가 판타지라고 부르는 그 스토리 콘텐츠가 이미 모든 민족의 신화와 민담에 있다는 것도 놀랍다.

 

다른 문화권을 비교해 연구하는 비교문화계에선 우리나라 콩쥐팥쥐전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신발’로 신분 상승하는 스토리의 민담을 소개하는데, 놀랍게도 전 세계 도처에서 이런 모티브의 민담이 전승되고 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신데렐라 이야기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대중은 소비자고 예술가와 작품은 곧 상품이 된다. 누구나 쉽게 접하고 열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뮤지컬 또한 이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구나 쉽게 소비하고 휘발시키면서도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고급스러운 그 무엇을 얻었다는 효능감을 주어야 하는 딱 그 정도의 위치에 뮤지컬이나 각종 공연시장이 있다.

 

오페라나 뮤지컬의 시작은 귀족 세계의 전유물을 서민의 세계로 끌어오며 시작했지만, 현대에 들어선 오히려 고급문화의 이미지로 대중화에 성공했다. 그 내용과 방식은 현대 뮤지컬의 일정한 문법으로 뿌리내렸다. 한국에서 비교적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라이선스 뮤지컬만 대강 추려도 얼마나 많은 서사와 노래가 유럽, 혹은 브로드웨이의 문법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세계의 뮤지컬 인구가 언제까지 영국과 미국의 현대 뮤지컬에 감동할까?

수없이 재생되는 복제품과 관객의 고령화까지 고려한다면 그 수명이 길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북미와 유럽시장의 쇠퇴는 이미 10년 전에 시작되었다. 주 관객층이 50대 이상이라면 다가올 시대의 대표성은 이미 잃은 것이라 보아야 한다.


한국 시장의 소비인구와 작품의 경향성을 주의 깊게 살핀 사람이면 한국 뮤지컬의 시장이 얼마나 큰 변동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40대의 여성 관객이 아직도 뮤지컬 시장의 핵심 관객층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아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레베카〉, 〈웃는남자〉, 〈지킬 앤 하이드〉와 같은 해외의 고전 작품을 감상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최근 창작뮤지컬에도 많은 관객이 객석을 채우고 있지만 암튼무튼 개인적인 생각에는 한국의 관객들이 변함없이 이런 작품 경향성에 만족할 것이라 보진 않는다.

 

한 해에 올라가는 웰 메이드 뮤지컬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에 이런 트렌드가 먹히고 있다고 본다. 뮤지컬은 과잉 공급되고 있다고 하는데, 소수의 뮤지컬 제작사가 과점을 유지하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국의 뮤지컬이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돌입하지 않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1980년대만 해도 영화간판을 그리는 화백이 따로 있었다. 지방 극장에선 한 개의 작품만 걸렸고, 그나마 서울 충무로 극장가에 5개 정도가 걸렸다. 작품이 적었기에 상영 기간이 길어도 괜찮았다.

 

〈람보〉, 〈터미네이터〉, 〈스타워즈〉, 〈인디애나 존스〉와 같은 할리우드 영화는 선택이 아니라 그냥 개봉하면 봐야 하는 영화였다. 다만 설날과 추석 시즌엔 20여 개의 외화를 들여와 극장마다 나누어 받아 개봉하곤 했다. 뮤지컬 시장으로 살펴보면 현재 뮤지컬 공급이 많은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수준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수준의 작품이 많다고 보는 것이 맞다.


10년 후엔 지금의 뮤지컬 핵심 관객의 자녀들이 20대가 되고, 지금 40대 여성은 50대가 된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변곡점을 찍었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동의한다. 이 논리의 전제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는 고전경제학의 명제일 뿐이다. 여기에 한국의 인구절벽 현상과 고령화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는 밝다고 보기 힘들 것이다.

이쯤에서 반대의 가정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만약 뮤지컬의 티켓 가격이 절반 정도로 내려간다면?

 

뮤지컬의 인구가 지금보다 두 배 이상 확대된다면?

 

10~20대의 K-POP 소비층이 뮤지컬 인구로 유입된다면?

 

지금 뮤지컬을 보는 사람들이 10년 후에도 자녀와 함께 뮤지컬을 즐기는 소비층으로 남아 있다면?

 

한국 뮤지컬이 세계 시장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트렌드로 자리잡힌다면?

 

BTS 공연을 보듯 한국의 팝가수와 배우들이 어우러진 뮤지컬 공연이 미주 순회 전석을 매진시키는 수준이라면?

 

과거에는 뛰어난 예술인에 광고와 자본이 한시적으로 붙는 시스템이었지만, 지금은 엔터테인먼트 자본이 시장을 형성하고 시장이 원하는 예술인을 ‘채용’한다. 한국의 5대 아이돌 기획사가 K-POP 시장을 석권하고 해외 진출에 성공했던 것처럼 한국의 공연예술 분야 역시 예술경영인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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