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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밥 먹여준다면] 예술경영의 시대1/2. 스타 탄생은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확률...'왕좌의 게임'

by 암튼무튼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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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움켜쥐며 흔들던 공연이 막을 내리고 커튼콜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나는 초연의 커튼콜 때 주연도 조연도 아닌, 그들의 배경처럼 서 있는 수많은 무명배우들(앙상블)을 주목한다.

분장을 지우고 뒤풀이 장소에 나타난 그들은 성공적인 공연을 끌어 준 연출가, 안무, 주연배우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자신의 출연이 무대 천장에 매달린 조명 하나보다는 빛이 났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당장 돌려 막아야 할 카드빚과 출연료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한다.


내 주변 지인 대부분이 공연 바닥에서 굴렀던 이들이라 술자리에 자주 올라왔던 주제가 ‘밥벌이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 정확히는 예술만 하면서도 생활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 예술계의 본질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이런 논의를 가로막는 토양은 문화계 밖이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 젊은 시절의 간난신고는 스타의 첫 관문이며, 어차피 스타라는 건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확률을 뚫고 올라서는 ‘왕좌의 게임’이라는 것이다.

공연 바닥에서 연기를 하고 춤을 추고 음악을 하는 이들 역시 처음부터 이 게임의 법칙에 동의한 수만 마리 나방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정말 그럴까?


TV 채널을 돌리다 경제채널 SBS CNBC를 접했다. 낮엔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심야나 주말엔 꽤나 흥미로운 공연 프로그램도 방영한다. 그중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클래식, 경제로 풀다〉였다. 한국예술종합대학교 홍승찬 교수의 강좌인데 클래식을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풀어낸 강좌다.

홍승찬 교수가 소개하는 <클래식, 경제로 풀다>의 차이콥스키 이야기

 

홍승찬 교수는 예술경영인, 공연기획자의 시원을 근대의 예술가와 후원자에서 찾았다. 중세의 후원이 메디치가와 미켈란젤로처럼 수직적 주문제작의 관계였다면 근대의 예술 후원자는 아티스트의 작품활동 그 자체를 후원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 후원자는 왕실이나 귀족 계층이었고, 산업혁명 이후엔 신흥부르주아지였다. 홍 교수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19세기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인 차이콥스키. 궁핍으로 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른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당시 러시아 철도 갑부였던 미망인 나데츠나 폰 메크 부인이다. 부인은 차이콥스키에게 당시 하급공무원 월급의 20배 정도였던 6,000 루블을 매해 지급하기로 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후원의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왕족이나 귀족이 젊은 천재 작곡가를 데려와 마치 푸들처럼 아이의 생일잔치에서 연주를 시키고 자신을 경배하는 교향곡을 작곡하라는 요청이 당시 풍토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쿨’한 접근이었다. 유일한 요청은 ‘따로 대면하지 않는다’는 것. 즉, 염문을 사전에 차단하며 〈템페스트〉와 같은 명작을 만들라는 요청이 전부였다.

 

13년간 그들이 주고받은 서한은 1,100통에 이르는데, 지금도 이 편지들은 깨끗한 존중과 사랑의 소재로 회자되곤 한다. 홍 교수는 예술경영인과 예술가의 원형을 이 이야기에 빗대어 설명한다.

홍승찬 교수가 소개하는 <클래식, 경제로 풀다>에서 예술가 리히테르 이야기

20여년 전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서 초빙한 일본 클래식 전문 기획사 재팬아츠(Japan Arts) 나카토 야스오 회장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재팬아츠는 세계적인 피아노 거장들을 공연을 열거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와 전속 계약을 맺어 온 세계 최정상급 기업이다.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이전 소속사이기도 하다.


나카토 회장은 러시아의 천재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를 처음 초빙했을 때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후에 서로 간의 의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설명했다. 비행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리히테르는 일본에서의 공연을 위해 직접 차를 몰고 러시아를 횡단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오곤 했다. 리히테르는 운전 중 차가 고장 나자 나카토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했고, 나카토 회장은 인근의 정비소를 찾아 수리를 해 주었다.

 

그 후 다시 차가 고장 나자 나카토 회장은 아예 자동차 매장에서 새 차를 뽑아 그의 앞에 대령했다. 언제나 일관된 태도로 묵묵히 성원하는 나카토를 리히테르는 신뢰했고, 나카토의 부탁이라면 다른 공연을 제쳐 두고 달려왔다. 이후 재팬아츠가 경영난으로 휘청거리자 리히테르는 헐값의 개런티를 받고 연장공연까지 해 주면서 재팬아츠를 도왔다.

이 이야기는 현대의 공연기획자와 예술인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전형일 수 있다. 예술경영이란 수준 높은 예술을 대중에게 보급하며, 예술가의 생존을 보장하는 활동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인재를 발굴하고 그의 예술적 독창성을 끌어올리는 매니저 역할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홍 교수의 관점을 소개한 이유는 그의 주장이 바로 젊은 예술경영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국내의 많은 대학에선 예술경영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투자, 홍보, 마케팅, 시장분석을 먼저 주입시킨다. 해당 업의 특질과 가치보다 자본에 채용될 수 있는 수단의 학문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유수의 공연기획사에서 투자유치계획서 정도는 매끈하게 만들어 PT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 내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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