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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밥 먹여준다면] 공연기획 예술경영 입문

by 암튼무튼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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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여간 코로나19로 공연 문화 예술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 엔데믹 시대로 국면이 전환되면서 다시금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혼자 공연 보러 가는 '혼공'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혼자 공연을 보고 나면 그 공연에 대해 나눌 이야기를 누구랑 할 수 있을까?

 

이 글은 공연을 직접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지만 공연을 접할 때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 될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 출간했던 [예술이 밥 먹여준다면](2020년 문체부 교양부문 세종도서 선정)을 기반으로 업데이트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예술이밥먹여준다면' 책을 통해 대학에서 공연기획과 홍보마케팅 강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공연 리허설

 

내 ‘업(業)’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언론인, 기업가, 공연 프로듀서, 교육자, 기획자, 교수 등. 모두 거쳐 온 일이지만 딱히 마스터라 불릴 만한 업적은 없는 것 같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2012)엔 건달 출신도 아니면서 건달과 대업(?)을 도모하는 공무원이 나온다. 건달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간인도 아닌 공무원 출신의 최익현(최민식 분)을 검사(곽도현 분)는 “반달이냐?”라고 조롱한다.

 

영화를 본 독자라면 이 ‘반달’이 상품의 기획과 판매는 물론 구역(속칭 ‘나와바리’)의 유통까지 기획하는 어둠의 설계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그는 경찰서장과 사우나도 가고 검사와 밥도 먹는다. 비록 건달의 세계라도 양적으로 축적되면 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모든 분야의 고도화 과정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사람이 바로 기획자다.

 

공연예술에선 공연기획자, 예술경영인이 이 몫을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앙트레프레너십(entrepreneurship)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대학을 비롯한 강단에서 선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가 정신과 실무에 유용한 문화예술경영과 공연기획 그리고 홍보마케팅 강의를 하고 있다.

 

주로 대박 난 뮤지컬 이야기 대신 참담한 실패 사례와 배고픈 아티스트들의 현실을 먼저 언급한다. 작품이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고, 스타가 아니어도 안정적인 경제 활동을 바탕으로 무대를 즐길 수 있는 토양이 바로 앙트레프레너십이 반영된 ‘예술경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앙트레프레너십(entrepreneurship)
기업가는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정신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위해 기업가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세나 정신을 일컫는다.

불어의 기업가(entrepreneur)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으며 혁신적이고 관리적 역량의 의미를 내포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기 위한 기회를 추구하고 자원을 조직화하려는 적극적인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새로운 생산 방법과 새로운 상품 개발을 기술혁신으로 규정하고, 기술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에 앞장서는 기업가를 혁신자로 보았다.

기업가가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도모하여 기업의 성장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의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문화전문 언론사에서 일을 하며 현장의 공연기획자, 연출가, 배우를 만나 왔고 직접 현장의 공연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공연의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을 노려보았다. 투자자의 돈을 끌어오기 위해 수많은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고 투자 유치에 매번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실패를 통해 배웠다.

 

연출가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배우들의 연습 시간과 리허설 기간을 늘려 달라고 요청할 때, 프로듀서는 투자금(엄밀히 말하면 대출금에 가까운 돈)을 상환할 수 있는 손익분기점을 계산한다. 대관료와 배우들의 연습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골머리를 싸쥔다.


공연예술에서 프로듀서공연기획자이며 때로 프로젝트를 총괄하기도 한다. 작가, 작곡가, 연출가, 무대감독, 음향감독, 안무가, 조명감독, 의상디자이너, 다양한 파트의 스태프들, 그리고 배우를 조직하고 감독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하게 된다.

 

공연기획사 대표가 프로듀서 역할까지 한다면 그 책임감은 더욱 커진다. 프로듀서의 역할은 사실상 공연 결정에서 투자유치, 제작과, 정산까지의 ‘모든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작품의 선정과 프로덕션의 구성(프리 프로덕션)’이다.


이따금 들려오는 유명 공연기획자의 자살 소식 뒤엔 한국 공연산업의 그늘이 있다. 관객점유율 65%를 예상하고 제작한 대형 뮤지컬에 관객이 들지 않자 채무와 채무보다 불어난 이자를 막기 위해 차기 공연작품의 제작비용으로 ‘돌려막기’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배우들의 출연료조차 주지 못한 절벽에서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서늘한 이야기다.

해마다 3월이면 청소년 시절 뮤지컬을 보고 압도당한 ‘그날’의 기억을 말하며 멋진 연출가 혹은 기획자를 꿈꾸는 청년들을 강의실에서 만난다. 물론 연극과 뮤지컬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청년들도 종종 만난다.

 

창작과 작곡, 연출 등과 같은 ‘판타지’를 다른 교수님들이 담당한다면, 내가 담당하는 영역은 ‘호러’가 아닐까 한다. 문화자본과 공연기획의 메커니즘은 물‘파산’하지 않는 공연기획의 방법론과 경영을 이야기한다.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와 연출가와 만나 크리에이티브 팀을 구성하고, 투자를 유치할 적합한 방법을 찾아 장시간의 준비 기간을 갖고, 공연의 종료까지 지휘한 끝에 정산에 이르는 프로듀서에 관한 일이다. 따라서 수업의 첫 화두는 공연 ‘현장’이다.

 

단순히 정량적 지표로만 보면 국내의 뮤지컬 공연시장은 단기간에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다. 2017년을 기점으로 대략 3,500억 원 규모를 넘어섰다. 물론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매출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2023년을 기점으로 다시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진출까지 고려한다면 5,000억 원 규모까지는 도달할 것이라 보는 이들도 있다. 뮤지컬의 본고장인 영국과 미국의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가 100년 이상의 역사적 부산물이라면, 한국은 30년간의 집중성장으로 시장을 형성했다.

 

고도성장의 결과일까?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물론, 이 시장에서의 양극화 현상도 심화되었다. 대형 공연기획사와 서울 중심의 대형극장이 다수의 작품을 흥행시키는 미다스의 손이라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형 공연기획사와 예술단체는 대관료를 지급하지 못해 공연을 중단하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예술경영’이라는 개념이 학술적으로 정착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예술경영이란 예술작품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기획자이자 생산자이며 관리자, 즉 공연예술 매니지먼트 활동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예술적 성취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이 질 높은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특히 이런 점에서 학생들에게는 공연예술의 작품성과 미학적 분석도 중요하지만, 소위 짠내 나는 현장의 이야기자본의 법칙, 마케팅과 공연 수익의 상관관계를 먼저 일러 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현실 인식’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한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여론 조사 통계 자료가 흥미롭다. 조사의 목적은 청소년 가정의 소득 수준에 따라 장래희망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중학생 응답자 391명에게 직업군 1순위와 2순위를 모두 적을 수 있도록 했다.

 

부모의 소득과 관련 없이 응답 청소년들이 1위로 꼽은 직업군공연기획자, 연기자, 연출자, 작가, 가수, 댄서, 운동선수와 같은 문화예술체육 분야로 무려 29.4%였다.

 

2000년대 들어 청소년들은 교사나 공무원과 같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안정성을 모두 구가할 수 있는 직종에 대한 강한 선호를 드러냈지만 최근의 경향은 ‘자기실현’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물론 K-POP의 글로벌화, 드라마와 영화산업, 개인방송 플랫폼과 수익의 고도화에 따른 문화예술 직업군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 효과도 간과할 순 없다. 어쨌든 한국의 청소년 상당수는 무대에 서거나, 무대를 만드는 일, 그 전초가 되는 작품 활동에 대한 강한 호기을 가지고 있다.

 

연출가나 무대감독 등을 꿈꾼다면 대학을 비롯한 교육 현장에서 해당 분야를 전공하면 된다. 하지만 학부 과정이라는 것은 현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과 경험만을 제공하는 곳이지 ‘꿈나무’를 키우는 곳은 아니다. 물론 한국종합예술학교나 한양대, 중앙대, 동국대, 서울예술대 문창과 등등, 연혁이 깊고 교수와 선후배가 서로 끌어 주는 기풍을 가진 학부도 있지만 상당수의 학부 과정에선 지식과 경험을 소개하는 교육을 한다. 물론 현장을 직간접 연계하는 교수님도 많이 계시지만 더러는 융복합 학문이라는 명분으로 예술 분야의 현장 경험도 없는 교수가 강의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대학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도 문제다. 일전에 국내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이 대학 교육의 비실용성을 지적하며 대학 졸업생들은 스펙과 상관없이 모두 입사 후 다시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우는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교수들이 일제 들고일어나 “대학이 취업예비군 양성소냐”반박한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현재 국내의 뮤지컬 시장을 비롯한 모든 공연시장에서도 산업화된 자본의 시스템에 따라 제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에서 매주 수십 개의 작품이 공연되고, 수십억 투자는 예사고 수백억 제작비가 들어가는 작품도 많다. 뮤지컬 시장과 현장의 원리를 먼저 접하고, 연극과 다른 공연 분야의 유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공연예술 중 뮤지컬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창작방법론이나 마케팅과 관련한 내용에선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의 사례도 소개하고자 한다.


공연기획 예술경영 입문서 [예술이 밥 먹여준다면]이 2~3년 전 세종도서로 선정된 까닭을 생각해 봤다. 공연 제작과정을 현실적으로 담아 이론으로 재구성했으며,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특정 배우의 출연료까지 언급한 내용이 현실감 있게 전달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예술이 밥 먹여준다면]은 이제 곧 현장에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공연기획과 예술경영 입문자들을 위한 책이다.

 

내 학부 과정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공역기획이나 창작을 가르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학부 과정에서 얻어야 할 것들이 있고, 현장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 소설과 희곡, 공연에 대한 경험, 작곡과 작사에 대한 창작방법론이나 경험은 꾸준히 축적되는 것이라 어느 세월 집중적인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반대로 투자와 후원, 보고서 작성과 계약, 홍보와 마케팅 같은 영역은 학부 과정에서 배우고 싶어도 현장에 몸 담그기 전에는 배우기 어려운 것들이다. 무대미술과 조명이나 음향 및 의상과 같은 영역은 더욱 그렇다. 단순히 현장의 ‘짬밥’이 아니라 세계적 수준의 작품에 대한 디자인 경험, 독창적인 연출 경험과 내공을 축적했는지가 중요하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특정한 영역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성립한다. 이 글은 관념이 아닌 현장의 지도를 보여 주고자 하는 문화예술 특히 공연예술의 기초 교양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모르는 것을 하나라도 알 수 있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다른 시선으로 접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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