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전생에 의한 육도 윤회는 없다.”
지금의 한국불교는 인간존재를 전생의 무명(無明) 속에서 태어나서 자신이 만든 번뇌로 인해 괴로움을 겪다가 마침내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12 연기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삶은 오직 괴로움 그 자체이므로 차라리 윤회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시대에 맞지 않는 교리를 펴고 있다.
그래서 불교 수행자들은 ‘나는 무상한 존재이고 무아’이기에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서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게 최상의 목표이다. 여기에서 출발한 것이 ‘공(空)’의 개념이다. 한마디로 말해 인간의 존재를 번뇌로 만들어진 한갓 고(苦)의 덩어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라는 말인가? 분명한 사실은 나라는 존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기에 의해 축복받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생일이 되면 친구와 부모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탄생은 고가 아니라 하나의 축복이다.
이젠 종교도 시절 인연에 따라 달라진다. 망상과 관념에 휘둘리는 교리에서 벗어나 문명시대에 맞는 불교의 가르침을 펴야 한다는 것이 [죽은 감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의 가르침이다.
만물은 연기법에 의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공사상을 스스로 지니고 있다.
연기법과 공사상은 만물의 위대한 힘이자 이치이다. 오늘날 한국불교는 인간을 윤회하는 존재로 보고 무상무아를 공사상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견해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공사상은 만물이 연기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여 새로운 것을 생성해 내는 창조성을 가리킨다.
인간과 꽃과 나무, 새와 벌, 하늘과 바다 등 만물은 각자의 연기의 원리에 의한 공사상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연기란 ‘인연이 인연을 만나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만물이 연기에 의한 공사상을 스스로 지니고 있지 않다면, 이 지구는 애초에 멸망했거나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힘은 연기에 의한 창조성을 바탕으로 하는 공사상에 있다. 용화 선지식의 연기에 의한 공사상은 만물을 창조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지금의 한국불교가 주장하는 공의 개념과는 확연히 다르다. 전생의 업에 의해 육도 윤회설을 바탕으로 한 불교의 기복 신앙은 더는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 불자들은 자각해야 한다.
불교의 연기와 공사상은 소중한 진리이다. 우리는 인연에 의해 살아간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신 것도 인연이요, 나를 배움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선생님도 인연이요, 친구와 이웃도 인연이다.
연기법은 이러한 인연의 결과물을 가리킨다. 좋은 인연을 만나서 좋은 일이 많이 생기면 좋은 연기가 되고, 나쁜 인연을 만나서 나쁜 일이 생기면 나쁜 연기가 된다.
이렇듯 공사상은 인연과 인연이 만나서 연기에 의해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창조성을 가리킨다.
또한 연기는 사람에게만 반드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도 어김없이 일어난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려면 햇빛과 물과 흙이 필요하다.
만약, 그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나무는 말라 죽거나 썩을 것이다. 그렇기에 흙과 물과 햇빛은 나무가 자라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렇듯 세상에는 인연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나라는 존재 역시 그렇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기에 의해 태어난 인연의 산물로서 부모님이라는 공사상에 의해 태어난 위대한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연기와 공사상의 바른 원리이다. 그런데 문제는 연기와 공사상이 적용되려면 몇 가지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죽은 건 연기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죽은 감나무가 꽃을 피울 수 없고 죽은 벌이 꿀을 만들 수 없다. 만약, 죽은 감나무가 꽃을 피우고 죽은 벌이 꿀을 만든다면, 그 꿀은 틀림없이 가짜이다.
둘째.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건 연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석가모니불과 예수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죽은 성인이다. 그런 이에게 아무리 빌어도 살아 있는 나와는 연기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소원을 들어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셋째, 똑같은 것끼리만 연기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생명에게는 그것만이 지니는 고유의 유전자가 있다. 토끼와 사슴이 연기한다고 해서 토끼가 사슴이 되고 사슴이 토끼가 되지 않는다.
이렇듯 연기는 반드시 똑같은 것끼리만 연기가 일어난다. 이것이 바른 연기법이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연기와 공사상의 바른 원리를 알고도 단지,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맹신하는 잘못된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그 업에 따라서 육도 윤회한다는 삼세 윤회설은 석가모니불의 진정한 가르침이 아닌데도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젠 종교도 시절 인연에 따라 변해야 한다.
종교의 참된 목적은 마음의 안식과 행복 추구에 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종교는 설 자리가 없다. [죽은 감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를 집필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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