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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고요하게 휘몰아치는 최은영 작가의 신작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by 암튼무튼 2023.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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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는 ‘함께 성장해 나가는 우리 세대의 소설가’로 동료 작가, 평론가, 독자 모두에게 특별한 이름으로 자리매김한 최은영의 신작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출간했다.

 
최은영
직업
소설가
소속
-
사이트
-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이하는 최은영의 이번 소설집은 『쇼코의 미소』 (2016), 『내게 무해한 사람』 (2018), 『밝은 밤』, 2021) 등의 이전 작품들에 담긴 문제의식을 한층 더 깊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어나간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 2013년 겨울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 그 작품으로 다음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은영이 써내려간 7편의 작품을 수록한 소설집이다. 사람의 마음이 흘러갈 수 있는 정밀한 물매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들을 바로 그 ‘사람의 자리’로 이끄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두 인물이 만나 성장의 문턱을 통과해가는 과정을 그려낸 표제작 《쇼코의 미소》, 베트남전쟁으로 가까운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응웬 아줌마와 '나'와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씬짜오, 씬짜오》,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케냐 출신의 청년 한지와 만나게 된 영주의 이야기를 담은 《한지와 영주》 등 맑고 투명한 그 목소리로 타박타박 담담하게 이어지는 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9.06.20
 
내게 무해한 사람
《쇼코의 미소》 이후 2년 만에 펴내는 최은영의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2년 동안 한 계절도 쉬지 않고 꾸준히 소설을 발표하며 자신을 향한 기대와 우려 섞인 시선에 소설로써 응답해 온 저자가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을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매만지며 퇴고해 엮어낸 소설집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 어떤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과거를 불러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사랑에 빠지기 전의 삶이 가난하게 느껴질 정도로 상대에게 몰두했지만 결국 자신의 욕심과 위선으로 이별하게 된 지난 시절을 뼈아프게 되돌아보는 레즈비언 커플의 연애담을 그린,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 《그 여름》과 악착같이 싸우면서, 가끔은 서로를 이해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두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지나가는 밤》 등의 작품이 담겨 있다.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9.06.20

특히 이번 소설집은 최은영 작가가 처음 작품활동을 시작했을 때 품은 마음이 지금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줌으로써 “깊어지는 것과 넓어지는 것이 문학에서는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한국일보문학상 심사평)을 감동적으로 증명해 낸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담긴 7편의 중단편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하다가도 어느 순간 이야기의 부피를 키우면서 우리를 뜨거운 열기 한가운데로 이끄는 몰입력과 호소력이 돋보인다. 그것이 최은영의 이번 소설집에서 강력하게 작동하는 힘이자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힘인 다른 사람에 대한 상상력일 것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예스24

더 진실하기를, 더 치열하기를, 더 용기 있기를『내게 무해한 사람』 이후 5년, 고요하게 휘몰아치는 최은영의 세계소설가 권여선, 서평가 정희진 추천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 「아주 희미한 빛

www.yes24.com

 

“내 안에서는 언니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나와 언니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또 다른 내가 싸우고 있었지.”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며 온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7편의 긴 편지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리는 데 특출한 감각을 발휘하는 최은영의 소설은 특히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과 부서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데, 더 정확히는 무엇이 관계를 어그러뜨렸는지 치열하게 들여다보는 데 능하다. 이번 소설집의 특징 중 하나는 그러한 관계의 양상을 사회적 문제와의 연관 속에서 헤아린다는 점이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이 정확하게 적시하듯 소설 속 인물들이 맺는 관계를 살피는 일은 그들이 발 딛고 선 땅이 어떠한지 파악하는 일과 떨어뜨릴 수 없다.

같은 여성이라는 조건만으로 연대나 화해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음을 인정하고 여성문제의 복잡함을 살피는 「몫」의 문제의식은 「답신」에서도 이어진다.

 

수록작 가운데 가장 온도가 높은 이 소설은 ‘나’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 언니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왜 언니가 아닌 조카에게 편지를 쓰는 걸까. ‘나’는 왜 더는 언니와 조카를 만날 수 없게 된 걸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보일 만큼 완강한 폭력이다. ‘나’는 조카인 ‘너’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는 것으로 편지를 시작한다.

 

‘나’는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빠의 방치 속에서 자라왔지만 책임감이 강한 3살 터울의 언니가 어려서부터 ‘나’의 부모 역할을 하며 가장 큰 힘이 되어준다. 그런 언니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날 집 앞에 검은색 세단이 멈춰 서더니 그 안에서 뜻밖에 언니가 내린다. 언니는 당황스러워하며 우연히 만난 학교 선생이 태워다 줬을 뿐이라고 변명하듯 말하지만 ‘나’는 언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언니는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자신보다 열다섯 살이 많은 그 선생과 결혼할 거라고 말한다. 임신을 했다고, 그 남자가 자신을 책임지겠다고 했다고.

 

하지만 정작 그는 상견례 자리에서, 그리고 결혼한 뒤에도 거리낄 게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노골적으로 언니를 무시한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에 참을 수 없이 분노하면서도 자신이 어떻게 언니를 도와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분노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고 만다.

 

“바라지 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스스로에게 새겨진 흔적을 정직하게 응시하며 타인과 사회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


후반부에 나란히 배치된 세 편의 소설 「파종」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흔히 ‘정상가족’이라 여겨지는 것과는 다른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보살펴준 오빠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동생의 이야기인 「파종」은 삶에 대한 오빠의 태도와 그가 남긴 사랑을 은유하는 공간인 ‘텃밭’을 배경으로 남매가 나눈 마음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이모에게」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나’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이모를 떠올리며 써 내려가는 이야기이다.

 

‘나’는 감정적으로 인색하고 엄격한 이모를 견딜 수 없어하며 자신에게 깊이 새겨진 그 흔적을 부정하려 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누구와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아껴준 이모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때문에 ‘나’가 “나는 이모를 판단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런 판단은 너무 쉬우니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가장 복잡하면서 어려운 모녀 관계를 긴 호흡으로 살핀다. 육십대 여성인 ‘기남’은 홍콩에 살고 있는 작은딸 ‘우경’을 만나기 위해 짧은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기남이 새삼 실감하는 것은 자신과 우경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선이지만, 그런 기남에게 뜻밖에 위안이 되는 존재는 바로 일곱 살의 손자 ‘마이클’이다.

 

마이클은 오랜만에 만난 기남의 관심을 끌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한편으로, 맑은 표정으로 기남에게 예상치 못한 말을 던지기도 한다.

 

기남은 우경과 마이클과 함께 홍콩 시내로 나들이를 갔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자신 때문에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집에 돌아온 기남은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다 불현듯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기남의 곁에 마이클이 다가와 앉더니 마치 기남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한다.

“부끄러워도 돼요. 부끄러운 건 귀여워요”라고.

마이클의 말에 기남이 느끼는 ‘따뜻한 통증’은 최은영의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 안에 퍼져나가는 감정과도 같다. 상처가 정확하게 건드려질 때, 잘 모르는 누군가가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 그래서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으리라고 예감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과 상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관계 안에서, 사회 안에서 무엇과도 무관한 채 서 있을 수 없는 우리의 존재. 그간 빛나는 작품들을 선보여온 최은영이 자신의 글쓰기를 끊임없이 점검하며 이번 소설집에 또렷이 새겨 넣은 것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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