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을 것이다. 손을 이미 씻었는데 또 씻고 싶은 느낌, 가스레인지를 껐는지 계속 확인하고 싶은 욕구,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근거 없는 망상, 필요 없는 물건을 주워 와 집에 쌓아두고 싶은 충동까지.
이들의 진단명은 모두 강박장애(OCD,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다. 코로나 감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간 이후, 청결에 대한 집착과 함께 높아진 불안으로 강박장애를 호소하는 이가 많아졌다. 위생에 대한 강박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우울증을 동반하기도 하면서 많은 이의 일상에 혼란을 초래하며 우리 사회에 강박에 대한 이슈를 다시금 불러왔다.
1996년 초판이 나온 이후, 강박장애로 고통받는 40만 환자를 구원한 의학계의 고전 베스트셀러 《강박에 빠진 뇌》의 출간 20주년 기념 특별판이 한국어로 번역·출간되었다.
제프리 슈워츠는 UCLA 정신과 의사이자 강박장애 전문가로, 20여 년을 강박장애 연구에 매진하며 강박사고와 강박충동의 원인을 뇌의 신경학적 불균형에서 찾았다. 이러한 상태를 ‘브레인 락 Brain Lock’이라고 하는데, 뇌는 불안의 목소리를 앞세워 계속해서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고, 그에 따라 특정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충동에 갇히게 된다.
2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밝혔듯,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자기 주도 행동 요법을 통해 이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이 책의 핵심 개념은 세월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해 여전히 건재하다. 이 치료법은 오늘날에도 외래 진료의 표준으로 쓰이고 있다. 이번 20주년 기념판은 기존 연구를 토대로 하되, 그간 추가로 이루어진 연구를 통한 더욱 풍부한 사례와 새로운 자료가 추가되었다.
한마디로 이 책의 메시지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약에만 의존해 수동적으로 낫기를 기다려서는 안 되고, 강박과 불안이라는 악마와 능동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강박장애 환자나 가족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매뉴얼이, 강박적 성격장애를 겪고 있거나 ‘혹시 나도 강박장애인가?’ 느끼는 이들에게는 스스로 점검하고 배워나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UCLA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강박 탈출 4단계 매뉴얼
스스로 너무 예민한가 싶은 지점은 누구에게나 있다. 대개 우리는 각자의 강박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의지만으로는 도무지 통제할 수 없어 원치 않는데도 어떤 강렬한 생각이 멈추지 않거나 남들은 하지 않는 기이한 버릇을 일종의 의식처럼 수행하고 있다면 이때부터는 강박장애로 진단되는 질병이다.
이들은 주로 상상 속 재앙을 피하고자 기이한 행동을 하는데, 가족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샤워를 30번 하고, 비행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청소를 13번 하는 식이다. 강박장애 환자들은 이러한 의식을 치르는 데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한다.
UCLA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 제프리 슈워츠는 10년 동안 1000명이 넘는 강박장애 환자를 진료했다. 강박장애는 40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는 의외로 흔한 질병으로, 대부분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다.
손을 하루에 100번도 넘게 씻어 손에 물을 묻히기만 해도 거품이 나는 남자, 플러그를 뽑았는지 계속해서 확인하며 결국 커피 머신과 다리미를 가방에 넣고 출근한 여자, 모든 것이 오염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가족과 16년간 만나지 않고 어머니 장례식에도 가지 못한 여자, 배터리 액이 새어 나올 거라는 병적인 공포로 새벽마다 교통사고 현장을 청소하는 남자까지.
일대일 상담과 집단 치료를 진행하며 4단계 자가 치료법을 이들에게 적용한 결과, 대다수가 일상을 훨씬 더 잘 꾸려갈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편안해졌다는 것이 다수의 성공 사례를 통해 증명되었다. 강박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뇌를 찍은 스캔 사진을 보고(전두엽 아래쪽이 과열돼 있다) 강박장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뇌에서 보내는 잘못된 메시지 때문임을 알고 오히려 안도한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뇌’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부터 치료는 이미 시작된다.
불안이 하는 거짓말을 깨부수고 마음챙김으로, 4단계 자가 행동 치료법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프리 슈워츠는 4단계의 자가 행동 치료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 단계 재명명은 원치 않는 생각과 충동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이건 강박사고고, 이건 강박행동이야.” 이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 단호하게,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 단계의 목표는 강박사고와 강박충동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과 충동에 대한 스스로의 반응을 제어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 재귀인은 “이 생각과 충동이 왜 사라지지 않고 나를 괴롭힐까?”에 대한 대답이다. 답은 뇌의 기어가 뻑뻑해서 뇌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계의 목표는 자꾸만 들러붙는 생각과 충동이 말을 듣지 않는 뇌 때문임을 주의 깊게 살피고 확실히 깨닫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 재초점은 성가신 생각을 피해 주의를 돌림으로써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단 몇 분이라도 좋다. 산책, 운동, 독서, 음악 감상, 게임, 뜨개질 무엇이든 좋다.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일기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뇌의 망가진 기어 전환 장치를 고칠 수 있으며 연습을 거듭할수록 뇌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네 번째 단계 재평가는 앞의 세 단계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로, 강박장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강박장애가 마음을 어지럽히는 가치 없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박장애를 다시 평가하는 것이다. 강박장애를 겪었기 때문에 더 세심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 되었다, 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게 되기도 한다.
이 치료법은 마법의 절대 공식이 아니다. 충동에 정확한 이름을 붙인다고 바로 충동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당장 좋아지길 바라는 지나친 기대는 치료 초기 실패에 이르는 가장 큰 요인이다. 강박사고는 절대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이 치료법의 목표는 강박사고에 대한 반응을 제어하는 것이다.
행동 반응을 조절하기 위해 새로운 지식을 활용하고 “이건 내가 아니라 강박장애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통제력을 얻고 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필요할 경우 적절한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행동을 바꾸면, 꼼짝 않던 뇌가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강박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
가족 문제로서의 강박장애를 다룬 6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강박장애는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 문제다. 강박장애를 방치하면 사람들을 점점 멀리하게 되고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 이 끔찍한 비밀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 영향은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전해지곤 한다.
강박장애 환자 가족들은 가장 먼저 ‘안 돼’라고 말하기를 연습해야 한다. 강박장애의 일부가 되어버린 가족들은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강박장애 환자가 요청하는 강박적인 행동을 대신 수행해 주거나 눈감아주는 조장자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강박장애 환자 가족들에게 강박장애를 돕지 말고, 행동 치료를 도우라고 말한다. 또한 강박장애를 진단받지는 않았지만, 아주 심하지는 않아도 골치 아프고 짜증 나는 강박 습관이 있는 이들도 이 치료법을 활용해 효과를 볼 가능성이 높다.
제프리 슈워츠가 이야기하는 4단계 자가 행동 치료법은 결국 나를 다스리고 통제하여 문제가 있는 뇌를 바꾸는 작업이다. 이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약물과 의사에만 의존해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분석하고 생각을 수용하고 평가한 다음, 어떻게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뇌와 거리를 두고, 마음챙김을 수련하는 것, 그 과정에서 내면의 안내자인 공정한 관찰자와 현명한 옹호자가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다. 강박을 떠나보내고 삶의 자유를 찾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책에서 정답을 찾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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