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동맹의 ‘첫 단추’, 6시간 15분 간의 치열했던 ‘죽음의 작전’
- 북한군에 맞선 스미스 특임부대원의 희생으로 지켜낸 평화
- 쓰라린 패배로 기억됐던 죽미령 전투를 다시 기록한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열흘째인 7월 5일 아침 8시 16분, 오산 죽미령에 미군이 투입된다. 수원에서 오산 방향으로 남진해 오던 5천여 명의 북한군에 맞서기 위해 오산 죽미령에서 전투를 치른 540명의 ‘스미스 특임부대’. 사실상 최초의 유엔군으로 투입된 이들은 전쟁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스미스 특임부대원은 장교를 제외한 병사들 대부분이 스무 살 안팎이었고, 그들 중 전투 경험이 있는 병사는 일부에 불과했다.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은 이동에 이동을 거듭하며 오산 죽미령에 도착했다.
반면, 한국 남침 이후 사흘 만에 파죽지세로 서울까지 함락한 북한군은 서울에서 3일을 지체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상황.
스미스 특임부대원들은 누적된 피로, 적에 대한 정보와 맞서 싸울 장비까지 부족한 상황에서 전투를 시작해야 했다.
1950년 7월 5일 오전 8시 16분, 스미스 중령은 북한군 전차부대가 가시거리에 진입해 올 때까지 기다렸고, 전차를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그러나 북한군 전차는 포탄 공격에도 끄덕하지 않은 채, 유유히 미군 방어선을 향해 돌진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세 시간여, 북한군 보병을 향해 스미스 부대원들의 일제 사격으로 혈투가 시작됐다. 5천여 명의 북한군 보병에 맞선 500여 명 스미스 특임부대원들은 여러 방면에서 열세였지만,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스미스 특임 부대 540명 중, 181명이 전사하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는 피해를 받게 된다.
과거, 죽미령 전투는 패배한 전투라는 일각의 평가가 있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았다. 예상과 달리 미군이 조기 개입했다는 점을 북한에 알렸고, 이 교전이 끝난 뒤 북한군은 전열을 가다듬는데 열흘 넘는 시간을 소비해야 한 것.
스미스 부대가 철수하는 과정에서 선두에서 인도한 이는 윤승국 대위였다. 긴급한 철수 작전이 진행됐을 때 지리를 잘 알던 윤 장군이 행렬을 이끌어 부대원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고마움의 의미로, 지난 2020년 주한미군 기지 캠프의 주 출입구 명칭이 ‘윤 게이트’로 공식 지정됐다. 이 전투를 기억하기 위한 움직임은 또 있다. 해마다 7월, 오산시는 죽미령 평화공원에서 추도식을 개최하고 있다.
스미스 특임부대의 죽미령 전투로부터 시작된 유엔군의 조기 개입이 없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한국 전쟁이라는 비극에 몸을 던졌던, 모두의 희생으로 평화를 지켜냈다.
한국 전쟁이라는 비극,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낯선 땅에 바친 스미스 특임부대원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특집 MBC ‘다큐프라임-최초의 ‘유엔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오늘 23일 오후 5시 1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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